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김두식

2012.04.21 20:49




"'선교지에서 목사는 안 받는 다더라. 선교를 하려면 전문적인 지식과 일자리가 필요하다. 그러니 선교사가 되려면 전문인이 되어야겠다. 대표적인 전문직은 바로 의사다. 주께서 내게 의사가 되라는 비전을 주셨다. 기도하고 의사가 되자. 열심히 공부하자'

저는 이런 논리 전개를 통해 의사의 꿈을 가진 많은 젊은이들을 알고 있고, 대학 입시에서 그 꿈이 좌절되어도 몇번이고 의대에 도전한 젊은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막상 의사가 된 후 처음 꿈을 이어가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천막장이(Tentmaker)가 의사 직업으로 바뀌게 되는 과정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선교가 정말 최종목적이라면 왜 그 나라에가서 막노동을 하거나, 철공소에서 일하거나, 자동차 정비사가 될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의사가 되고 싶어서 선교사를 미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말 선교사가 되고 싶어서 의사를 지망하는 것입니까?...(중략) 초대교회에서는 누구도 로마의 지도자가 되거나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전문직으로 나가는 비전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난했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으며,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당위'와 성경이 선언하는 '사실'을 분명히 구분했고, 그 가르침에 정확히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 끝없이 낮아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p49)


"근본적으로 진로문제가 우리 청년들에게 그렇게 깊은 고민거리가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상향성의 욕망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더 높이 올라가야 더 많이 베풀 수 있고, 더 많은 걸 가져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 마음을 점령해 버린 것입니다. 더 나아가 '높이 올라가야 많이 버릴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까지 생겼습니다. 똑같이 선교사가 되더라도 서울대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사람은 특별한 대접을 받습니다. 더 많은 것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서울대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분이 어느날 자기 인생을 다시 돌아보고 선교사의 소명을 확인하여 보장된 교수의 길을 버리고 선교지로 떠났다면, 물론 훌륭한 일이고 가치있는 희생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런 멋진 희생을 하기 위해 지금 먼저 서울대와 하버드대에 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지금 이미 선교사의 목표를 가졌다면 거기에 합당한 경력을 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p57)


"많은 기독 청년들은 대학 입시를 비롯한 약간의 실패 앞에서 과감하게 '주의 종'이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 교회가 요구하는 만큼 충분히 높은 자리에 올라갈 자신이 없어진 젊은이들,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세웠지만 그걸 성취할수 없게 된 사람들이 "나는 주의 뜻을 따라 이런 하향성의 길을 간다"며 선택하는 것이 목사의 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걸 아는 총명한 목회자와 지망생은 자기가 그런 낙오자가 아닌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죽어라 명문대를 가려고 노력합니다. 다행히 그 노력의 열매를 거둔 사람은 평생 그걸 자랑으로 안고 살아갑니다. 그 열매를 거두지 못한 사람들은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집요하게 학위 사냥을 하며 살아갑니다." (p63)


"100주년기념교회는 2005년 12월 '만 50세 이상의 여자로 집사에 임명된지 5년 이상, 100주년 기념교회에 등록한지 2년을 초과한자 가운데 성실하게 주일 예배에 참여하는 자를 권사로 호칭하고, 만 60세 이상의 남자로 집사에 임명된지 5년 이상, 100주년 기념교회에 등록한지 2년을 초과한 자 가운데 성실하게 주일예배에 참여하는 자를 장로로 호칭한다.'는 교회 정관을 채택했습니다. 목사-장로-권사-안수집사-서리집사순서대로 세상과 똑같은 상하 권력관계가 교회안에 들어오고, 많은 교회에서 장로권사 임직때 사실상의 매관매직 행위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일종의 고육지책으로 일정한 연령에 달한 사람들을 모두 장로, 권사로 부르는 돌파구를 선택한 것입니다. (중략) 한국사회에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한 격렬한 투쟁이 그 직위가 주는 실질보다는 오히려 그 호칭이 주는 형식을 획득하기 위한 경우가 많은 것과 일맥상통하는 문제입니다. 한번 검사장인 사람은 퇴직해서 변호사가 되어도 영원히 검사장으로 불리고, 학장을 한 교수는 학장을 그만두어도 영원히 학장으로 불리며, 심지어 무덤에 들어갈 떄도 그 호칭을 가지고 갑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덤에 들어갈때 장로, 권사로 불리고 싶은 소망이 있는 것이지요. 100주년 기념교회가 일정연령 이상의 사람을 모두 장로, 권사로 부르기로 했던 것은 이런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실험이었습니다 " (p298)





헌법의 풍경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법학교수 김두식 교수님이 기독교인으로서 교회의 고민을 다룬 책이다.

(고대 YWAM 출신이란 점이 이색적이군 킁킁)


목사나 신학교수가 아닌 사람만의 독특한 문체가 돋보인다. 독자에게 경어를 사용한다던가, 때론 강한 의사표현으로, 때론 자기성찰에 가까운 내면적 고백으로, 역사를 설명할땐 그 진지함과 유희로  글의 흐름의 이끌어 나가는 모습이 마치 진짜 교수님이 앞에서 강의를 하는것 같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가 평신도였다는 점이 매력있게 다가왔다. 평신도지만 교회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이 세상과 교회를 향해 날선검과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저자의 모습은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공감대를 불러 일으킨다.


최근에 읽은 몇권의 서적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요즘 느끼게 되는것은

한국교회의 희망은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성을 회복하는것이라는 생각이 꾸준히 들고 있다.


현대의 교회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포기함으로써 외형적인 평안을 얻었다.

초대교회와 같이 재산을 나누는 일도 없고, 남을 믿지도 않기에 배신당할 일도 없고, 다툴일도, 용서할 일도 없다. 겉으로 보면 지극히 평안해 보이지만, 이것은 그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교를 나누는 친목 단체일 뿐이다.


저자의 제안중에 아주 맘에 드는 제안 한가지. '지정 헌금'제도


헌금하면서 봉투에 "000형제에게 드립니다"라고 쓰면 그 헌금은 회계를 통해 바로 그 형제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학비가 부족하다, 선교가야 하는데 재정이 부족하다, 불의를 참지 못해 직업을 잃었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이 지정헌금을 하면, 헌금을 받은 사람들은 누가 준 것인지 알 수 없기에 그냥 하나님이 주신 걸로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는 것이다.

신학적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저자의 아내가 경험했던 순수한 실험이라고 한다. 

헌금을 내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지, 이웃을 섬기기 위해 하는것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현대 크리스찬들들이 얼마나 많은가.  Absolute 하다. 이것이 공동체고, 주안의 형제자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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