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도 좋아 / 김병년

2013.08.15 09:35




우리의 아픔은 신비다. 하나님의 신비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을 머리로 이해하려는 부질없는 집착으로부터 안식을 얻는다. 신비를 받아들이면,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인생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다. p22


하나님이 가시였다. 찌르는 가시. 신앙이 성숙하려면 자신에게 실망하고 사람에게 실망하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실망해야 한다지만, 하나님이 가시가 되어 찌르는 그 아픔은 육체의 고통보다 더 고통스럽다. 하나님이 가시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삶이 혼란스러웠지만 그 사실을 알게되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하나님꼐 안찔려도 삶이 아프고 하나님께 찔려도 아프다. 가만히 돌아보면 이래저래 아픈 삶이다. p36


예수님이 쓰신 면류관에 사용한 가시로 추정되는 '아타드 가시'의 나무는 밀밭 사이에서 주로 자라며, 추수하는 농부들의 휴식처라고 한다. 우리 문화에서는 가시나무 아래서의 휴식을 상상할 수 없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성한 아타드 가시나무 그늘 아래서 쉬었다는 기록이 성경에 나온다(삿 9:15) 이 얼마나 놀라운 상징인가! 찌르는 가시가 인간에게 안식을 준다. 또한 예수님의 머리를 찔러서 흐르는 피가 우리를 구원하였으니 이 가시는 죄인들에게 영생을 선물하는 가시다. 이와 같은 역설이 또 있을까.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데 그 가시나무가 사용되다니. 이것이 십자가다. 가시에서 꽃이 핀다. 가시에서 구원을 맺는다.p43


임마누엘은 죄인들을 죄에서 구해 내려고 오시는 분,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 분은 우리의 곤경을 너무도 잘 아시고, 그 곤경 속에서 우리 인간과 함께 머무신다.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사신다. 내가 웅덩이에 빠져 도움을 간구했을때, 나는 하나님이 곧장 나를 나쁜 상황에서 건져 주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황가운데로 찾아오셔서 '함께 머무셨다'  p67


인생은 참 냉정하다. 선한 선택을 했다고 고통이 줄어들지 않는다. 바른 선택을 했다고 칭찬해 주지 않는다. 무엇을 선택했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한다. p79


우리는 고통 자체가 없어야 하고, 하나님이 결코 변화와 고통을 경험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태어날 수 없고, 고난당하고 죽을수도 없다는 인본적인 생각의 산물일  뿐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런 이해는 고난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적인 인성을 허상으로 만들 뿐이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말한 것처럼 '고통받지 않는 하나님은 인간을 고통에서 구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약해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함 가운데로 오신것이다. p160


사람들은 질병이 불안을 가져오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잊고 있는 것은, 삶 자체가 본래 불안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흔들리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고통을 품고 진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은 견고한 반석이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인생은 바람에 늘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바위이시다. 그래서 삶을 안정시키려는 부질없는 시도를 버리고 그분을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오직 반석이신 그분을. p182







복음과 상황에 인생학교를 꾸준히 연재하시는 김병년 목사님의 두번째 책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국내 모든 사역자 중 이분만큼 필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을까 싶다. 

아마 그 이유는 머리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처절한 고통이 몸에 글로서 새겨졌기에 몸으로 글을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문장, 한문장마다 목사님이 짊어지신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환자는 다 신학자가 된다 라는 말이 있다. 아플수록 오히려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 삶의 모든 진리와 근원에 대해 철저하게 질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한다. 문제해결을 해주셔서가 아니라, 영원하신 그분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 곁에 인간으로 오셨듯이, 즉 약함가운데로 그분께서 친히 들어오셨듯이, 고통가운데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고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능을 발견한다.


고통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저자는 고통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문제들을 드러낸다. 고통 앞에서 직면하는 재정문제, 성적인 욕구, 이혼에 대한 갈등 등 이 땅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해 정면돌파를 시도하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이 부분이 나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때로 감사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를 강요받는다. 슬퍼하고 애통해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해결될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하라는 폭력에 시달린다. 위선이다. 억지 감사이다.

종종 후배들에게 '정말로 감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자들의 믿음은 더욱 대단한 믿음이다' 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오해한 잘못된 신념이었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신다. 그 분은 울고 아파하는 자에게 위로를 약속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감사의 아이콘으로 삼는 욥 마저도 그에게 고통이 찾아온 그 순간에는 슬픔을 숨기지 않고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드러냈다. 욥기 자체는 감사보다 불평이 더 많은 성경이며 하나님께서도 이 모든 불평을 다 받아주셨다.


이쯤 되니 저자에 대한 경외심마저 든다. 소설가 김홍신은 풀이 갓 베었을때 향기가 짙어지는 것처럼 사람은 상처가 있어야 향기가 짙어진다고 했는데, 저자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지금 나에게는 아무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 민망하다.

만약 지금 나의 아내가 쓰러져 내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그 분 앞에 반응할까. 은혜로 그리스도의 마음과 성품이 새겨지는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만 그것이 이렇게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던가. 고통 가운데 있던 그렇지 않던, 아름다운 죽음을 사모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태도임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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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의 균형잡힌 기독교 / 존 스토트

2013.07.07 22:11





"예수님은 언제나 보수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진보주의자였습니다. 성경을 대하는 그분의 태도는 분명 보수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요10장)',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장)'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지도자들을 향해 그들이 구약성경을 무시하고 성경의 신적 권위에 진정으로 순종하지 않는다고 신랄하게 질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진보주의자였습니다. 그분은 유대교의 기성체제를 주저하지 않고 날카롭게 비판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전통에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입니다...(중략)그분은 일반적으로 멸시를 받던 계층들에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당시에는 허용되지 않았던 여인들과 공적인 대화도 서슴지 않으셨으며, 또 어린아이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당시 로마사회에서 원하지 않는 아이는 버려도 되는 하찮은 존재였고, 그분의 제자들도 어린아이를 예수님의 사역에 성가신 존재로 여겼습니다." p46


"우리가 교회나 사회에서 어떤 변화를 거부하려고 할 때, 우리가 변호하려는 것이 성경이 아니라 교회전통이나 문화적인 유산은 아닌지 질문해야 합니다. 반면에 우리가 변화를 원할 때, 우리가 반대하려는 것이 성경인지 아니면 개혁되어야 할 전통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p54


"우리들이 드리는 어떤 예배는 너무 형식적이고 너무 훌륭한데 생기가 없습니다. 동시에 현대적인 어떤 예배는 경건함을 완전히 상실해 우리를 괴롭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이 임재하신다는 가장 큰 증거가 요란함에 있다고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람과 불이 성령의 상징이긴 하지만 비둘기 또한 성령의 상징입니다. 성령이 능력으로 그 분의 백성에게 찾아올때, 때로는 적막과 경배감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합 2:20)'" p67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님이 교회로 하여금 가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으라는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을 주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대치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 명령이 이웃 사랑을 복음전도의 관점으로만 재해석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상명령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새로운 기독교적인 차원, 즉 이웃에게 그리스도를 전할 의무를 추가함으로써 그 계명을 풍성하게 한 것입니다" p80







오늘날 개신교 사회가 맞이한 커다란 비극 중 하나는 양극화이다. 

지성과 감성, 보수와 진보, 형식과 자유, 복음전도와 사회참여, 갈라진 두 진영은 저마다 주께서 우리편에 계시다고 외치지만 진리는 어느 한쪽 극단에 있지 않다. 존 스토트는 이 포인트를 아주 잘 짚어냈다.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전략은 그리스도인들이 균형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임을 그는 확신한다.

우리는 보통 자기자신의 기질에 의존하여, 나는 '진보주의자야', 나는 칼빈주의자야' 라고 스스로를 규정하지만 우리의 기질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우리를 판단하고 컨트롤하도록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균형을 잃어버리게 된다.


자칫봐선 존 스토트가 일종의 양시론을 펴보이는것 같아 보인다. 심지어 양방향의 극단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나는 미국사회가 아닌 한국사회에서 성도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태도는 또 다른 형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에선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In essentials unity,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In non-essentials liberty,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In all things charity.

모든 것에 사랑을"

똘레랑스. 

서로 다른 기질에 대한 관용과 사랑을 갖추는 것이 우리 사회에 많이 부족해 보인다.

지금은 자연인으로 돌아간 유시민은 자신의 신념인 진보주의를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감정이나 정신적 태도라고 정의했다. 감정이나 정신적 태도는 상대적인 것이며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과 다른 생각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선악의 잣대로 모든 일을 판단하면 자칫 삶을 이념에 종속시키는 비극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중재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존경하는 목사님이 오랜시간 기독교윤리, 사회참여에 대해 공부하시고 난뒤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꼭 보수적인 교단에서 목회를 하시겠다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이것이 부르심이구나 싶었다. 하나님이 모세를 언약과 계시의 중재자로 부르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보혜사 성령하나님을 중보자로 부르셨듯이, 중재자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존재한다. 

양극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대적 소명은 무엇일지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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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존 스토트의 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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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협동조합의 아버지, 가가와 도요히코

2013.06.30 02:30





가가와 도요히코 사역의 100주년을 맞이한 2009년, 그를 기념하고 젊은이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일본에서 기획된 만화이다.

일본 장로교 목사로서,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 구제활동을 많이 하였다.


우리가 일본 기독교에 쉽게 호감을 갖지 못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군국주의에 저항하지 않은 많은 일본의 기독지성인들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수십년이 지난 이젠 제국주의식 목회나 선교를 하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는 쪽은 우리가 아닌가 싶다

우찌무라 간조보다 폭넓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알게 도요히코. 우리도 이제 협동조합법을 시행되면서 관련 인물이나 사례들이 많이 알려지는것 같다


일본에선 그가 협동조합운동을 한지 100년이 다되간다. 스페인의 몬드라곤도 이미 50년이 넘었다. 현대차가 갑자기 협동조합이 된다고 노조가 경영을 있을까. 갈길이 멀다.


세월도 세월이지만 저변을 넓혀야 한다. 얼마전 프레시안이 지난 생을 마감하고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는 뉴스를 봤다. 미미한 수준이지만 어찌됐든 유행이 아니라 대세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가와 도요히코같이 헌신된 선구자도 한명 나와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협동조합의 역사 속에 기독교가 있다. 소유와 경쟁은 기독교가 배격해야 가치다. 저항이 예상되지만 인본주의 신앙을 비판하기에는 아직 정의나 사회구원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미미한 수준이다. 사람은 만인을 위하고, 만인은 사람을 위한다는 가가와의 정신은 예수님이 삶으로 보여주신 메시지와 다를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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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창안하신 부부질서 / 김원호

2013.06.16 23:15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후 인간에게 필요한 어떤 사회 조직체를 만들시기 전에, 즉 교회나 선교단체, 국가 등을 조직하시기 전에 제일 먼저 결혼제도를 창안하시고 아담과 하와의 결혼을 직접 주례하시어 부부로 삼으셨다.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남녀의 결혼으로 이루어진 부부를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실 뿐 아니라 인간의 어떤 사회조직보다도 부부에게 우선권을 두고 계심을 의미한다. (p29)


하나님이 부부를 가장 중요시하고 가장 우선시하는 창조 질서를 만드신 바로 직후에 우리의 적인 사탄이 무슨일을 했는가를 보고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부부를 유혹하여 그 사명을 이루지 못하도록 그들을 파괴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p33)


신앙을 가진 부모들도 결혼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교훈한다.

'처음부터 아주 꽉 잡아라', '아침밥에 밀리면 평생 밀린다.'

유교의 권위주의적 가부장제도에서 나온 산물이다. 조선시대 유교화 정책이 정착하면서 남성중심의 사회문화에서 나온 이 산물때문에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 부부들이 깨어져 가고 있다.(p40)


하나님 → 예수님 → 남자 → 여자

하나님의 영적 권위의 질서를 보면 남자가 여자 위에 있다. 겉으로 보면 남자가 군림하도록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남자의 권위는 예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남자가 자기 맘대로 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하나님이 예수님께 군림하지 않고 예수님이 남자에게 군림하시지 않은 것과 같은 의미이다.(p44)


하나님 → 예수님 → 남자  

                        → 여자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버리고 남녀가 항상 평등한 관계임을 주장하고 상호대립과 경쟁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젊은 부부들은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 흑백논리로 항상 내가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식의 태도이다. 이 세상 질서는 부부를 파괴하는 요인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내를 돕는자(helper)로 창조했다고 하시면서 성령 하나님(helper)과 동일한 이름을 부여하셨다. 이는 아내로 하여금 남편을 돕되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남편을 도울 수 있도록 하셨다고 이해한다. (p70)


부부질서를 가르치면서 새롭게 배운 것이 있다. 부부는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말씀을 자기만이라도 철저하게 순종할 때 즉 상대는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더라도 나만이라도 순종할 때 하나님이 나의 순종을 보시고 상대편을 고치신다는 사실이다. 아내가 변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나만이라도 말씀에 순종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내를 고치기 시작하심으로 내가 잔소리하고 불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을 깨달았다. (p102)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거시기 떨어진다. 아예 남편이 아내 돌보는 것을 막아 버리는 잘못된 인간의 가르침이다. 아내의 손을 만져 보라. 당신의 뼈, 당신의 살이다. 나는 내 갈비뼈, 내 살의 건강과 행복 위해 나 자신을 투자하는 사람이다. (p107)


아픔의 상처가 드러날 때 그것으로 상대편을 평가하여 "뭐 이런 사람이 있어!"하고 후회하지 말라. 사람은 원래 깨어진 세상, 하나님 창조 질서를 어긴 환경에서 자라다 보면 누구나 그런 모습을 지니게 되어 있다. 그것이 정상이라고 보는 눈을 가져라.(p162)


용서는 나를 묶고 있는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길이며, 복종을 가능케 한다. 용서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으며 입은 상처가 아프지 않게 느끼는 단계가 올때까지 반복적으로 '용서합니다'를 선포해야 한다. (p186)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베드로전서3:1-2)

이 말씀은 아내의 조건 없는 복종이 남편에게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p189)


예수님이 왜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주셨는가?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엡 5:26~27)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주셨던 또 하나의 목적은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자 함이였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내 생명을 주었을때 아내의 모습이 이런 모습으로 변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p232)





그리스도인의 권리포기를 지으신 김원호 장로님의 책이다. 

부부관계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경험적으로나 상투적으로 풀어내지 않고 오직 성경에만 근거하여 해설하고 있다.


남존여비 사상이 깊숙히 뿌리내린 한국사회에서는 그리스도인 부부의 삶이 파괴되기가 쉬운데,  이 이유중의 하나가 사람이 가르친 질서(유교 사상)를 따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스스로를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지만 공자의 말과 행동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 더 많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관용표현중에 남존여비 사상이 베어있는 말들이 참 많이 있음을 깨달았다.


문화와 세계관이 그러하다보니 그 동안 성경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 

예컨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고린도전서 11장 3절의 의미를 잘못 받아들여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고 인식하고 여자 위에 군림해도 된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한국교계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신학적 빈곤일뿐이다.


부부의 영적 성숙도는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느냐로 결정된다. 교회에서는 집사, 장로, 권사, 지도자란 직분으로 영적 수준이 표현될수 있겠지만 그 모습이 실제가 아니다. 예수님이 죽지 않으셨으면 나에 대한 사랑도, 나의 구원도, 그분의 부활도, 그분의 영광의 보좌도 없었듯이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위해 죽지 않으면 부부의 사랑도, 부부의 행복도, 자녀들의 행복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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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호, 성경적부부, 하나님이창안하신부부질서

교회 다니는 십대 이것이 궁금하다 / 찰스 콜슨

2013.03.12 00:02




교회다니는십대, 이것이 궁금하다

저자
찰스 콜슨, 해럴드 피케트 지음
출판사
홍성사 | 2006-05-23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이 책은 십대를 대하는 모든 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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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독교는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 아닌가요?

A. (중략)...사실을 따져보자. 예수님은 위대한 여성 해방자셨다. 예수님은 여성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서 그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게 하는데 역사상 어느누구보다도 많이 기여하셨다. 예수님은 공공연하게 여성과 직접 대화를 나누셨는데, 당시엔 그런 일을 용납하지 않았고 세계 곳곳에서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 정도로 여겼다('계몽된' 로마인들은 여성을 어마나 경시했던지, 여자 아이를 야생동물에게 먹이로 주거나 그냥 티베르강에 던져버리곤 했다.) 요한복음 4장은 예수님이 경멸의 대상이던 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놀라운 사건을 보여준다. 그 여인은 전 남편만 다섯이었고 예수님을 만났을 당시에도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다. 39절을 보면 이 여성의 간증으로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또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그분의 죽음을 애도하러 찾아온 여인들에게 나타나셨다. 

   사도바울과 베드로는 여성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 남성과 동등하게 존중하는 전통을 이어갔다. 바울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분을 섬기도록 부름받은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한 자라고 가르친다(갈 3:28-29) 여성운동가를 포함한 일부 여성들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성경의 명령에 화를 내지만 ,그들은 남편들에게 부과된 더 큰 명령을 보지 못한다. 남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것처럼 아내를 사랑하고 자기 몸처럼 아끼고, 아내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라는 명령을 받는다(엡5:25-33) 이는 남편이 아내를 위해 자기 목숨을 기꺼이 내놓아야 한다는 듯이다....(중략)



Q. 예수님을 한번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그들이 지옥에 가는 것은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요?

A. (중략)...사실 이 문제의 초점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아니다. 이것은 그보다 훨씬 방대한 문제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구원의 조건을 정하신 하나님께 우리가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원하는 구원의 조건을 하나님께 요구할 것인가에 있다.(중략)

    우리가 할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친구와 이웃에게 신실하게 선포하고 그들에게 회개와 믿음을 촉구하는일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그분이 원하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면,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정죄하실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진 로마인들에게 바울이 답변한 내용의 요점은 "그런질문을 해선 안된다"(롬 9:19-24)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그 질문에 답하셔야 한다는 주장, 하나님이 그분의 주권적 특권과 선택을 타락하고 악한 피조물에게 설명해 그들의 타락하고 악한 논리와 정의감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더없는 오만한 생각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리라(사 55:8-9)"



Q. 하나님은 왜 분명하게 자신을 보여주시지 않나요?

A. (중략) 하나님은 인간이 되심으로 인류가 그분과의 관계 안으로 돌아오도록 초대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을 찾으셨다. 역사의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모든 사람 앞에 나타나시면 사람들은 그 분을 믿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기로 선택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압적인 으름장으로 우리가 겁먹고 움츠러들어 복종하도록 만드는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아오라고 초청하신다. 그분은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사용해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전1:27)

   하나님이 더욱 분명히 나타나시지 않는 이유는 사랑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로 선택하길 원하신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강압적으로 휘두르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하고 완전한 계시를 주심으로, 우리가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수도 있는 선택의 여지를 남겨주신다.







교회에서 새로이 중등부 교사를 하게 되면서 읽게 된 책이다.

물론 누가 읽으라 한건 아니지만...


십대들이 던지는 질문을 100가지로 요약하여 질문과 답변을 제시하였는데, 그 질문들이 매우 현실감 있고 나 역시 십대때 가장 의문을 품었던 질문들이 많았다. 하나님의 존재성, 선과 악에 대한 문제, 심판에 대한 문제와 같이 일반적인 문제부터, 과학과 지적설계론, 동성애, 생명윤리, 정치와 직업세계관까지 총 망라하는 질문들은 주일학교 교사라면, 그리고 10대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라면 반드시 '질문'해야 하고 '답변'할수 있어야 할 주제들이다.


저자가 미국인이기 때문에 뒷부분에서는 미국 크리스찬 학생들이 겪어야 할 고민들이 다소 느껴진다.


세월이 흐를수록 요즘 학생들은 기본적인 성경지식이나 배우려는 열정이 점점 사그라든다 라는 생각이 든다.

10대 크리스천들의 이탈은 더 이상 미국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어느나라보다 무거운 짊을 지고 사는 한국 청소년들이 이제는 성, 과학, 생명윤리와 같은 더 큰 차원의 고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를 위해 눈물의 기도를 심으신 부모님과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듯이, 오직 기도뿐이다.


언제 한번 우리 중등부 교사들에게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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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10대들의 궁금증, 고등부, 신앙궁금증, 중고등부, 중등부, 청소년

다시, 프로테스탄트 / 양희송

2013.02.14 21:26





"이 책은 그동안 우리끼리 서로 칭찬하고 인정하며 임금놀이를 해왔다는 사실을 화들짝 일깨우고자 쓴책이다. 레슬리 뉴비긴이 그랬던 것처럼 차가운 방 안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난로에 이미 불이 꺼진 줄 모르셨습니까?" 라고 말하자는 것이다."(p14)


"개신교가 10대에서 30대까지의 젊은 층에서 이탈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이 세대에서 두드러지는 이슈에 대한 전향적인 대응에 실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중략)  아버지 학교의 대대적 확산을 보면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낙관할 것이 아니라, 주일학교, 대학부, 청년부,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혁신적인 성공사례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심각한 위기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사교육과 입시에 전적으로 매여 있는 10대들에게 "대학 잘가라"고 기도회를 열어주는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런 구조에서 아이들이 놓여나도록 해주는 선제적 역할을 과감히 해내지 못하면, 자살과 왕따로 얼룩진 10대들과 그 부모들의 가슴속에 개신교는 부재한 것이다. 청년들의 삶을 옥죄는 현실적 고민을 단지 청춘의 가슴앓이로 간주하는 낭만적 태도는 그 세대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입증하는 것일뿐이다. 20대와 30대의 가슴을 뛰게 할 수 없는 개신교는 이제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누구의 가슴도 뛰게 할수 없을 것이다."(p38)


"성장을 이루어 낸 목회자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한 것으로 간주되고, 성도들의 삶에 대한 권위와 차별적 지위를 확보하게된다. '개신교 성직주의'는 그런 면에서 '개교회 성장주의'와 거의 필연적으로 만난다. 이 문제는 결국 교회는 무엇하는 곳이며, 목사는 무엇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환원된다. 교회성장을 하나님 나라의 성장으로 간주하고, 목사는 교회를 성장시키는 사람으로 인식하는한 우리는 이 질문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교회론의 갱신 없이 목사론의 갱신이 없고, 그 양자의 갱신없이 하나님 나라의 증거는 불가능하다.

나는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 이 물의 정체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장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성장을 추구하는 그 자체가 아니다. 성장을 배타적으로 추구한 과정에서 개체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리고, 성도를 단지 숫자로 보게 하며, 집단의 한 구성요소로만 파악하게 되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 속성을 위배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신약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는 초대교회의 모습은 마을마다 십여명에서 많으면 삼사십명이 모이는 소규모 모임이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초대형교회는 대량생산시대에 비로소 가능해진 모델이다. 규모의 경제와 효율성을 추구하고, 관리능력을 증가시켜서 사람들을 통제 가능하게 파악하는 모델이다. 거기에는 '천하보다 더 소중한 한 생명' 같은 개념이 적용되기 어렵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양육프로그램과 제자훈련 과정이 쏟아내는 '제자'들에 환호하고, 자신들이 속한'공동체'가 너무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찬양할 때에, 우리가 속고 있는 것은 없는지 스스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p119)


"우리는 공룡이 됨으로써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만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피 터지는 생존경쟁을 당연시하지 말자. 되돌아보면, 우리가 생존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살아남았는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를 지탱해 주던 생태계의 기반 위에서 영양을 공급받았고, 위로받았으며, 자극과 격려를 얻었다. 이겼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어리석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고, 언제나 오만하다. 그러나 우리를 지탱해준 생태계를 의식하는 이들은 언제나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성공에 기뻐하며, 남들의 모험을 지지해 줄것이다"(p195)






한국 개신교가 새로워지는 길은 스스로 종교개혁당시의 개신교 정신을 되찾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 책은 지금의 패왕적 권위를 지닌 목회자의 과잉대표성, 교계 중심의 패러다임을 기독교 사회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것이 그 길임을 이야기 한다.  한국교회의 성장주의, 성직주의, 승리주의는 교계 중심의 패러다임이 나은 오해의 산물이다.


책을 읽은 뒤, 지금은 위기가 아니라 매우 절박한 순간이다라는 느낌이 든다.


서울의 한 중대형교회에 속하는 나의 교회는 1만 성도의 비전을 교회의 비전으로 삼고 있다.

한쪽에서는 1만성도 파송운동(분당00교회)을 하는데, 한쪽에서는 1만 성도의 비전을 갖고 있다.

무엇이 부흥이고 무엇이 진리인가.


이런 현실이 말해주듯이, 지금처럼 성장을 이뤄낸 목회자가 존재가치를 입증한 것으로 간주되는한 부흥이란 단어를 쓰더라도 교회의 성과를 수량으로 측정하는 지금의 상황은 회사경영과 다를게 없다. 요즘 기업도 그런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경영을 말하지 않고 Spritual value를 추구하는데 하물며...

나의 교회도 크기만 작을뿐 동일한 욕망과 문제를 안고 있을뿐이다. 한쪽은 대형교회가 되어서 문제라면 다른 한쪽은 대형교회가 되지 못해서 문제인게 차이일뿐,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이제는 작은교회가 아름답다는 주장조차 조심스럽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의사에 절망적이지만 객관적인 진단에 환자가 저항하듯이,  우리는 늘상 이러한 일에 인간들이 왈가왈부하는것이 주제넘은 일이며 모든 일은 하나님이 알아서 심판하신다, 심지어 이런 현상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개입해서 막지 않으셨으니 결국은 허락하신 것 아니냐라는 반론에 부딪히는데, 이는 인간들의 잘못을 하나님께 전가하는 비열한 자기변명일 뿐이다.


정말 개인의 죄에 관심을 갖는것이 복음주의자의 태도일까. 

이대로 연대책임을 지지 않고 시간이 흘러간다면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인 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또 다시 노력하고 개선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이 상황은 그럼 어떻게 말할수 있을까. 

회사야 무너지면 나라든 채권자든 회생시켜주지만, 교회가 무너지면 누가 회생시켜주나.


신앙이 세상과 만나는 좀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겠다. 

직접적인 권력의 추구가 세상에 더 나은것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지난 5년의 역사가 말해주었다.

다시 개인으로 돌아가 내가 어떻게 제 2의 인생을 판에 박힌 삶을 살지 않고 살아가야할지 고민하고 "참여"해야 겠다. 지금 통과 하고 있는 이 막장같은 상황도 결국 종착지는 아닐테고 벗어나기 위해선 누군가의 힘이 필요할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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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기독교 생태계, 다시 프로테스탄트, 성장주의, 성직주의, 승리주의, 양희송, 종교개혁, 청어람, 한국교회

쌍용자동차 이야기, 의자놀이 / 공지영

2012.09.26 12:41


의자놀이
국내도서
저자 : 공지영
출판 : 휴머니스트 201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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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측은 인수.합병 용역의 주간사로 삼정KPMG 컨소시엄을 선정해 서울지방법원에서 허가를 받았다. 컨소시엄이란 규모가 큰 사업이나 투자 따위를 할 때, 여러 업체 및 금융 기관이 연합하여 참여하는 것을 말하는데, 상하이차의 매각에 왜 컨소시엄이 필요한지 모르겠거니와 이때 난데없이 맥쿼리증권의 이름이 보인다. 맥쿼리? 들어본 이름이지 않나? 최근 제멋대로 통행료를 올린 우면산 터널에도 맥쿼리란 이름이 보이고, 지하철 9호선에도 보이고, 인천공항을 파는 것이 소원인 이명박 대통령만큼 간절하게 인천공항을 사고 싶어 하는 명단에도 이 이름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큰아들 이지형이 2007년 9월까지 맥쿼리 IMM의 자산 운용사 대표로 있음을 참고로 알려드린다."



"앞으로 우리를 고용하고 월급을 주고 해고하게 될 자본은 대개 쌍용자동차와 같은 성격을 가지게 될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해고하는 것도 이런 자본일 것이다. 눈이 팽팽 돌정도로 헷갈려서 대체 누가 이 회사의 주인인지도 모를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아직도 의혹에 싸여 있는 BBK를 보라. 주가 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소액 주주들역시 대체 누구를 고소해야 좋을지, BBK의 주인이 누군지 아직도 모른다. 맥쿼리사를 보라. 인천공항을 매각한다는데 그걸 맥쿼리사가 산다면 이명박 정부가 공항을 파는 것인지 사는것인지 아리송해질 수 있다.

현대자본의 무서움은 바로 이 모호함이다. 그래서 쌍용자동차 해결이 우리에게 더 중요해진다."




정의에서 나오는 분노는 진보의 한 요소가 된다고 빅토르 위고는 말했다.


이 정권이 해도해도 너무 한다라는 생각도 들지만 분노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픔과 애통함이 앞선다.


생활고와 죄책감으로 죽어간 조합원들. 그리고 사측의 회유와 협박으로 투신자살한 조합원의 아내들. 


나는 무엇을 했나. 왜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나.

우리가 사는 현실이 어떤 것인지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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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김두식

2012.04.21 20:49




"'선교지에서 목사는 안 받는 다더라. 선교를 하려면 전문적인 지식과 일자리가 필요하다. 그러니 선교사가 되려면 전문인이 되어야겠다. 대표적인 전문직은 바로 의사다. 주께서 내게 의사가 되라는 비전을 주셨다. 기도하고 의사가 되자. 열심히 공부하자'

저는 이런 논리 전개를 통해 의사의 꿈을 가진 많은 젊은이들을 알고 있고, 대학 입시에서 그 꿈이 좌절되어도 몇번이고 의대에 도전한 젊은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막상 의사가 된 후 처음 꿈을 이어가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천막장이(Tentmaker)가 의사 직업으로 바뀌게 되는 과정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선교가 정말 최종목적이라면 왜 그 나라에가서 막노동을 하거나, 철공소에서 일하거나, 자동차 정비사가 될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의사가 되고 싶어서 선교사를 미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말 선교사가 되고 싶어서 의사를 지망하는 것입니까?...(중략) 초대교회에서는 누구도 로마의 지도자가 되거나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전문직으로 나가는 비전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난했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으며,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당위'와 성경이 선언하는 '사실'을 분명히 구분했고, 그 가르침에 정확히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 끝없이 낮아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p49)


"근본적으로 진로문제가 우리 청년들에게 그렇게 깊은 고민거리가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상향성의 욕망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더 높이 올라가야 더 많이 베풀 수 있고, 더 많은 걸 가져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 마음을 점령해 버린 것입니다. 더 나아가 '높이 올라가야 많이 버릴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까지 생겼습니다. 똑같이 선교사가 되더라도 서울대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사람은 특별한 대접을 받습니다. 더 많은 것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서울대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분이 어느날 자기 인생을 다시 돌아보고 선교사의 소명을 확인하여 보장된 교수의 길을 버리고 선교지로 떠났다면, 물론 훌륭한 일이고 가치있는 희생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런 멋진 희생을 하기 위해 지금 먼저 서울대와 하버드대에 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지금 이미 선교사의 목표를 가졌다면 거기에 합당한 경력을 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p57)


"많은 기독 청년들은 대학 입시를 비롯한 약간의 실패 앞에서 과감하게 '주의 종'이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 교회가 요구하는 만큼 충분히 높은 자리에 올라갈 자신이 없어진 젊은이들,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세웠지만 그걸 성취할수 없게 된 사람들이 "나는 주의 뜻을 따라 이런 하향성의 길을 간다"며 선택하는 것이 목사의 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걸 아는 총명한 목회자와 지망생은 자기가 그런 낙오자가 아닌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죽어라 명문대를 가려고 노력합니다. 다행히 그 노력의 열매를 거둔 사람은 평생 그걸 자랑으로 안고 살아갑니다. 그 열매를 거두지 못한 사람들은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집요하게 학위 사냥을 하며 살아갑니다." (p63)


"100주년기념교회는 2005년 12월 '만 50세 이상의 여자로 집사에 임명된지 5년 이상, 100주년 기념교회에 등록한지 2년을 초과한자 가운데 성실하게 주일 예배에 참여하는 자를 권사로 호칭하고, 만 60세 이상의 남자로 집사에 임명된지 5년 이상, 100주년 기념교회에 등록한지 2년을 초과한 자 가운데 성실하게 주일예배에 참여하는 자를 장로로 호칭한다.'는 교회 정관을 채택했습니다. 목사-장로-권사-안수집사-서리집사순서대로 세상과 똑같은 상하 권력관계가 교회안에 들어오고, 많은 교회에서 장로권사 임직때 사실상의 매관매직 행위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일종의 고육지책으로 일정한 연령에 달한 사람들을 모두 장로, 권사로 부르는 돌파구를 선택한 것입니다. (중략) 한국사회에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한 격렬한 투쟁이 그 직위가 주는 실질보다는 오히려 그 호칭이 주는 형식을 획득하기 위한 경우가 많은 것과 일맥상통하는 문제입니다. 한번 검사장인 사람은 퇴직해서 변호사가 되어도 영원히 검사장으로 불리고, 학장을 한 교수는 학장을 그만두어도 영원히 학장으로 불리며, 심지어 무덤에 들어갈 떄도 그 호칭을 가지고 갑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덤에 들어갈때 장로, 권사로 불리고 싶은 소망이 있는 것이지요. 100주년 기념교회가 일정연령 이상의 사람을 모두 장로, 권사로 부르기로 했던 것은 이런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실험이었습니다 " (p298)





헌법의 풍경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법학교수 김두식 교수님이 기독교인으로서 교회의 고민을 다룬 책이다.

(고대 YWAM 출신이란 점이 이색적이군 킁킁)


목사나 신학교수가 아닌 사람만의 독특한 문체가 돋보인다. 독자에게 경어를 사용한다던가, 때론 강한 의사표현으로, 때론 자기성찰에 가까운 내면적 고백으로, 역사를 설명할땐 그 진지함과 유희로  글의 흐름의 이끌어 나가는 모습이 마치 진짜 교수님이 앞에서 강의를 하는것 같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가 평신도였다는 점이 매력있게 다가왔다. 평신도지만 교회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이 세상과 교회를 향해 날선검과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저자의 모습은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공감대를 불러 일으킨다.


최근에 읽은 몇권의 서적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요즘 느끼게 되는것은

한국교회의 희망은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성을 회복하는것이라는 생각이 꾸준히 들고 있다.


현대의 교회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포기함으로써 외형적인 평안을 얻었다.

초대교회와 같이 재산을 나누는 일도 없고, 남을 믿지도 않기에 배신당할 일도 없고, 다툴일도, 용서할 일도 없다. 겉으로 보면 지극히 평안해 보이지만, 이것은 그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교를 나누는 친목 단체일 뿐이다.


저자의 제안중에 아주 맘에 드는 제안 한가지. '지정 헌금'제도


헌금하면서 봉투에 "000형제에게 드립니다"라고 쓰면 그 헌금은 회계를 통해 바로 그 형제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학비가 부족하다, 선교가야 하는데 재정이 부족하다, 불의를 참지 못해 직업을 잃었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이 지정헌금을 하면, 헌금을 받은 사람들은 누가 준 것인지 알 수 없기에 그냥 하나님이 주신 걸로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는 것이다.

신학적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저자의 아내가 경험했던 순수한 실험이라고 한다. 

헌금을 내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지, 이웃을 섬기기 위해 하는것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현대 크리스찬들들이 얼마나 많은가.  Absolute 하다. 이것이 공동체고, 주안의 형제자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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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속의세상, 김두식, 김두식교수, 세상속의교회, 지정헌금, 헌법의풍경, 홍성사

2020 부의 전쟁 in Asia

2012.01.23 23:27
 


 

경영서적이 아닌 미래학 서적이다.  이 책은 글로벌 위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에 따라 우리나라가 그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한국판 잃어버린 10년이 올 것이라는 경고를 던지고 있다. 직장생활이라는 개인적인 삶의 새로운 변화에 앞서 굳은 다짐을 위해 동해바다 앞에서 해돋이까지 보고 왔건만 정초부터 이런 우울한 내용을 읽고 있으니 맥이 빠지려고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이 매우 설득력 있고 현실성 있는 이야기였기에 마지막 장을 읽는 순간까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1부에서는 우리나라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적인 불황을 맞이하게 되는 배경과 원인, 그 결과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 산업은 선진국들이 누르고 있고, 기존 산업은 후발 주자들의 추격에 시달리는 이른바 넛크래커 현상에 빠진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간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국가적 발전의 부작용으로 몇 가지 시스템적인 한계에 봉착했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 부동산 버블과 재정적자는 모든 선진국들이 겪었던 문제들이거나 이머징국가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풀어야 했던 문제라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격렬한 사회적 분열과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자본의 취약성과 준비되지 않은 남북 통일의 문제라는 이중고를 안고 있는 형국이다. 
위에서 제기된 문제들 중 내 생각엔 저출산과 고령화는 서로 깊은 연관성이 있고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아닌 자연적,사회적 현상이기에 더욱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가 2018년에 인구의 14%가 65세 이상이 되는 고령화 사회 진입하게 되는데 그때에는 은퇴하는 베이비 부머 세대와 노인인구를 합한 28.6%가 평균소비의 40%를 줄이므로 내수 시장이 엄청난 침체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 조세부담을 놓고 노인들의 짐을 짊어져야 할 젊은이들이 많은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고령화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표면적인 경제지표에 그치지 않고 젊은이와 노인들을 양극단으로 나누어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노인들은 노인들대도 불만을 폭발하게 만들어서 안 그래도 심각한 사회 분열과 갈등에 더욱 불씨를 지피게 된다고 생각한다. 

암울하게도 이 책은 저출산으로 수십 년 후에 인구의 20%가 사라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위기를 피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기 때문에 앞으로의 대안은 리스크를 최소화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언급한다. 정부나 기업의 파격적이고 강력한 경제적 지원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기에 그렇다 쳐도, 아직도 우리나라가 출산과 관련하여 직간접적으로 투입하는 예산이 연 2조원에 불과하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책에서 언급한 프랑스와 전라남도 강진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정책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아이들에 대한 투자가 가장 큰 미래 투자라고 믿었던 프랑스의 인식은 결국 프랑스의 출산율을 2점대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것도 15년이나 걸린 정책적 노력임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기업의 경우도 국가의 장기적인 미래와 사회적인 책임감을 갖고 여성이 지속적인 일자리를 가지면서 불편함 없이 출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부에서는 좀 더 세계적인 관점에서 물 부족, 신종 바이러스, 기축통화, 미국과 중국의 관계, 미래형 비즈니스 등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피부에 와 닿지 않았던 문제들뿐만 아니라, 향후 아시아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글로벌 정세를 두고 경제 전쟁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3부에서는 Fantastic Korea를 이루기 위한 미래전략과 위기해법에 대한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가 여타의 이머징 국가와 구별되는 점이 통일의 문제인데 이 부분에 대한 냉철한 지적이 인상적이었다. 바로 통일의 딜레마이다. 흔히들 통일을 이루면 북한의 광대한 자원과 인력을 흡수하고 안보 리스크도 줄어들며 국가 신용도를 높이고 외국 투자 자본의 유입을 촉진할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통일에 대한 명확한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통일을 맞이하면 상당한 사회적 갈등 경제적 충격 맞이한다고 경고한다. 예컨데, 독일은 동독과 서독간의 현격한 경제수준과 인구의 차이 때문에 통일 후 20년 동안 2천 조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갔는데, 독일보다 더 큰 GDP의 차이를 보이는 남북한이 함께 잘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북한시설의 근대화가 필요하고 GDP 동반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상당한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과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이 될 것이란 이야기다. 결국 통일에 대한 기회나 위기들은 젊은 세대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인데 요즘처럼 통일에 대한 의지가 희박한 세대들에게는 더욱 어려울 것이며 이를 위한 의식의 교육을 역설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해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각각의 문제들에 대한 경제적 정책적 해법 이외에 보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해법도 제시하고 있다. 가장 먼저 위기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으며 우리는 안팎으로 다가오는 위기들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또한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전략적으로 할 필요성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지렛대 전략, 미래시나리오, 스토리 전략, 집단 지성 등 다양한 창의적인 방법들이 있다. 이러한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선제적 대응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들어가는 비용보다 더 효과적이다.

책이 강조하고 있는 SMART 능력을 함양한 미래사회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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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기도 : 현대인을 위한 렉시오 디비나 / 이경용

2010.07.16 09:57



의외로 자기 기도생활에 만족하는 크리스찬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성도들의 기도만족도를 조사했을때 100점 만점에 54점밖에 되지 않다고 한다
낮은 점수이긴 하지만 기도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의 간절한 표현이라고 볼수 있다

신기한 것은 오랜신앙생활을 했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10년,20년전에 하던 기도의 내용과 지금의 기도내용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청원을 요청하는 대상만 변할뿐, 우리의 기도는 발등에 떨어진 불, 내게 맡겨진 일 등에 대해서 기도하는 것에 그친다.

렉시오 디비나는 경건생활의 하나로, 묵상후에 단순한 삶의 적용보다, 더 깊은 묵상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큐티와 같은 일반적인 묵상과 달리 '관상'(Contemplatio)이라는 단계를 통해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임재안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렉시오 디비나는 우리를 부르짖음보단 잠잠함으로, 현안에 대한 기도보단 말씀묵상기도로, 머리보단 가슴으로 인도한다.

이것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며 초대교회때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내려오는 성경적이고 전통적인 기도이기도 하다. 주로 수도원이나 외국에서 쓰여지는 의미와 적용법들이 한국 목회자의 관점에서 우리정서에 맞게 잘 쓰여졌다.

메마른 묵상에 지쳤다면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기도와 묵상의 본질로 돌아가기를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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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시오 디비나, 렉티오 디비나, 말씀묵상기도

TCP/IP소켓 프로그래밍

2009.04.12 20:48


  TCP/IP 소켓프로그래밍 / 윤성우 / 프리렉

열혈강의 C와 C++시리즈로 유명한 윤성우씨의 또 다른 책이다.
운영체제(OS) 수업을 들으면서 채팅프로그램을 위해 소켓을 다룰 일이 있었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소켓, 프로세스, 멀티쓰레딩, IPC, 동기화 기법에 대한 개념을 윈도우와 리눅스상에서 모두 구현해봄으로써 열혈강의 시리즈답게특유의 친절한 설명으로 가려운곳을 아주 잘 긁어준다. 내 생각엔 소켓엔 관심이 없어도 프로세스와 쓰레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어보면 좋을것 같다. 특히 운영체제나 시스템 프로그래밍 수업을 듣는다면...

덧.
그동안 개정판이 나왔다. 단순 개정판이 아니라 내용이 좀 더 늘었다.
붙이는 김에 그동안의 윤성우씨의 책들도 같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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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coding

2009.04.12 01:27



Short coding  Ozy | 한빛미디어 | 2008
숏코딩은 코드 길이를 극한까지 줄이는 코딩을 의미한다. 골프에서 낮은 타수로 홀인하는 것처럼 숏코딩은 알고리즘 문제를 푸는 코드의 바이트 수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코드 골프로도 불리는 숏코딩은 프로그래밍 언어가 가진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탐험하는 프로그래머의 지적 유희이며,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프로그래밍 언어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POJ 온라인 심사 사이트에서 자신이 작성한 코드를 심사받을 수 있고, 전세계 프로그래머들과 기량을 견줄 수 있다. 이 책은 ACM-ICPC(국제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시 대회) 알고리즘 문제 44가지를 풀이하고, 코드를 단축하는 다양한 기법과 연구 과정을 단계별로 보여준다. 





main(n){gets(&n);putchar(n%85+5);}
위 코드는 공백으로 구분된 정수 두개를 읽어서 합을 출력하는 C언어 코드이다.
실무에서 이딴식으로 코딩하면 얻어 터지겠지 :)

알고리즘 문제가 너무 많아서 결국 보다가 관뒀다. 관심있으신 분은 반값에;; 
프로그래밍의 지적 유희를 경험하기 위해 위함이지만 확실히 쓸모는 없다.
그러나.
학부시절 아니면 언제 이런 경험을 누려보나.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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